인간 문명의 역사 속에서 문구는 빼놓을 수 없는 도구다. 안료를 쓴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 무중력 상태 우주에서 기록 수단인 된 우주 볼펜…. 특히 한국은 예부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쓰는 문구를 ‘문방사우(文房四友)’라 하여 친구로 표현하기도 했다. 역사를 거듭하며 발달해 온 문구는 오늘날 ‘취향의 도구’로 자리하고 있다.
In the old days, the brush, ink, paper, and ink stone used in writing or drawing were called the “Four Friends of the Study.” Stationery items that have developed over time are now regarded as tools to express one’s personal taste.
연필은 누군가에겐 창작의 연료였고, 누군가에겐 추억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 연필을 비롯한 ‘문구’는 수많은 발명품 옆에 항상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종이와 펜 대신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찾는다. 메모장 애플리케이션을 켜서 기록하고, 사진을 찍거나, 녹음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 태블릿PC나 패드로 스케치는 물론 다양한 색과 질감으로 색칠까지 가능하니 훨씬 간편해졌다. 그렇다면 종이와 펜을 비롯한 문구는 미래에 사라질 것인가? 그 답은 ‘아니오’라 확신할 수 있다.
Before the digital age, pens and pencils were indispensable. Like in the rest of the world, daily activities in Korea could not have functioned efficiently without them. Today, with more than 90 percent of Korea’s population having access to the internet and smartphones, there is no longer a need to reach for pen and paper. A smartphone can be used to jot down notes, compile lists, record voice memos, and take pictures, and with tablet computers you can even sketch with a variety of colors and textures.
‘디깅(Digging)’ 트렌드와 결합된 문구 – “DIGGING MOMENTUM”
문구 마니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건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모두가 똑같이 스마트폰을 들고, 키보드 자판을 치고 있는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디지털 사회에서 문구는 개인의 ‘취향의 도구’가 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제품별로 다양한 탄생 일화가 있고, 사용자의 수많은 취향을 맞추기에 이만큼 풍성한 아이템이 있을까. 연필만 하더라도 주로 사용하는 손(오른손잡이, 왼손잡이), 무게, 색, 나무 종류, 촉감, 흑심 진하기 등 각종 조건에 따라 선택지는 무궁무진하다.
As a result, the stationery market is facing headwinds. Amid less use of pens, pencils, and paper, especially by younger people, and a glut of cheap products in discount chain stores, neighborhood stationery stores are dwindling. Still, it would be premature to call writing supplies obsolete since they have found a new niche in the heart of consumers.
Many Koreans still value traditional desk essentials to express themselves and treasure the intimacy conveyed by a handwritten letter. The possible combinations of colors, textures, designs, and composition simply outshine cookie-cutter digital gadgets. In short, pens and paper have become tools to express one’s personal taste.
유통업계는 이렇게 자신에게 맞는 취향에 집중하고 파고드는 행위를 ‘디깅(Digging)’이란 단어로 표현한다. 한 해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는 도서< 트렌드 코리아 2023 > 에는 ‘디깅 모멘텀(Digging Momentum)’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이는 자신이 좋아하고 선호하는 분야에 더 깊게 파고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In recent years, Korea’s retail industry capitalizes on a consumer trend called “digging” that sees consumers delve more deeply than usual into a particular hobby or interest. The practice has become widespread enough to be included in this year’s edition of Trend Korea, an annual publication analyzing consumer trends and providing insights into must-haves and must-dos.
국내 최대 만년필 동호회 펜후드(PENHOOD)는 디깅 트렌드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만년필, 필기구, 손 글씨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이곳은 약 4만 6,000명에 달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펜후드가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오프라인 행사인 펜쇼에서는 몇십 개의 부스에서 다양한 만년필 컬렉션을 선보인다.
Penhood, Korea’s largest club of fountain pen connoisseurs, is a prime example of the breadth of “digging.” The club has about 46,000 members who love fountain pens and other conventional writing instruments. To satisfy curious shoppers, the club regularly hosts events with scores of booths displaying large collections of fountain pens.
팬데믹과 함께 커진 ‘다이어리 꾸미기’ 문구 시장 – COVID-19-BORN “DAKKU”
특히 최근의 문구 취향은 더욱 다양해지고 세분되고 있다. 이는 지난 2~3년 동안 이어진 팬데믹 기간의 트렌드 변화다. 사람들은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날로그 활동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취미 활동을 찾아갔다.
In particular, recent stationery tastes have become more diverse and detailed. This is a trend change during the pandemic period that has continued for the past 2-3 years. As people spend more time indoors, they have sought out hobbies that allow them to focus on themselves to quench their thirst for analog activities.
그 중에서도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는 특별한 기술이나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취미 활동으로 꼽힌다. 특히 다꾸는 큰돈이 드는 취미가 아니다. 500~3,000원 사이면 새로운 문구 아이템을 구매하기에 충분하다 보니 진입장벽 또한 낮다. 다양한 아이템으로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는 데 익숙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다꾸 문화가 확산하면서 온〮오프라라인 매장에서 문구 아이템 역시 매출 효자 품목이 되었다.
“Dakku,” a portmanteau of Korean words for decorating journals, became a pastime, especially among young people. It is an activity that does not require specific skills, detailed instructions, or large amounts of money. Colored masking tape, memo pads, and sticky notes are a sufficient starter kit.
For young people, the first smartphone generation, dakku is a retro hobby that their parents may have engaged in as teenagers. Drawing pictures with a pen, writing on a blank notebook page, and attaching sticky notes, patterned masking tape, or scraps of paper into the journal are a good way to spend a few carefree hours. Investing only 500 to 3,000 won (less than US$3) in supplies is enough to give your journal its own personal touch.
그리고 스마트폰에 익숙한 세대에게 ‘다꾸’는 색다른 레트로 문화이기도 했다. 빈 노트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손 글씨를 쓰며, 스티커와 각종 패턴이 인쇄된 마스킹 테이프, 종이 등을 붙이는 다이어리 꾸미기는 킬링타임용으로도 제격이었다.
And for the generation accustomed to smartphones, ‘Dakku’ was also a unique retro culture. Drawing with a pen on a blank notebook, writing by hand, and decorating a diary with stickers, masking tapes with various patterns printed on them, and paper were all great ways to kill time.
문구 마니아들을 위한 이곳 – A place for stationery lovers
동네 문방구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지난 7월 15일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 에서는 폐업을 앞둔 문방구의 정리를 돕고자, 일일 영업 사원으로 변신한 출연진들의 모습을 비춘 적 있다. 이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동네의 오래된 문방구, 문구점 수는 점차 줄어가고, 이 자리를 생활용품점, 무인 문구점 등이 대체하고 있다.
Neighborhood stationery stores are gradually disappearing. On the July 15th broadcast of the MBC entertainment program <What Do You Do When You Play?>, the cast members transformed into daily salespeople to help close down a stationery store that was about to close. This is not something that happened yesterday or today. The number of old stationery stores and stationery shops in neighborhoods is gradually decreasing, and household goods stores and unmanned stationery stores are taking their place.
사람들의 아쉬움 때문일까. 역으로 사람 냄새, 추억을 담은 문구 공간들은 주목받고 있다. ‘문구’라는 상품에 더욱 집중한 공간들로, 서울의 성수동, 홍대 입구, 종로구, 이태원 등 소위 핫플레이스에 위치해 눈길을 끈다.
For now, old-fashioned stationery stores in trendy areas with a lot of foot traffic are in less danger of going out of business, thanks to consumers’ sense of nostalgia. These stores, along with new outlets selling specialized stationery, are found in Seoul’s Seongsu, Hongdae, Jongno, and Itaewon areas.
국내 문구 기업 모나미(monami)의 오프라인 공간 ‘모나미 스토어’ 역시 젊은 세대들이 꼽는 핫플레이스다. 지난해 성수동에 오픈한 모나미 스토어 성수점은 1963년 출시된 국내 최초의 볼펜인 모나미 153이 만들어진 성수동 공장을 모티브로 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다. ‘모나미 팩토리(Monami Factory)’를 주제로 한 이곳에선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스토어뿐만이 아니라, 모나미의 역사와 제품을 통해 새로운 브랜드 경험을 제공한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체험형 특화 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펜을 DIY 해서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것. ‘DIY 153 시리즈’ 볼펜 만들기, 프러스펜 만들기부터 잉크 랩(Ink LAB) 공간에서는 다양한 색상의 잉크를 조합해 나만의 만년필 잉크 DIY 체험 등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다양한 수요를 가진 고객들을 겨냥한 문구 상품들이 즐비하다.
Monami Stores have become hotspots for young people. The store in Seongsu-dong, which opened last year, reinterprets the neighborhood’s original factory where “Monami 153,” the iconic Korean ballpoint pen, was first produced in 1963. Aside from a wide assortment of stationery products, the store also provides visitors with an opportunity to learn about Monami’s history and products and to assemble their own pen in an on-site workshop, an experience especially appealing to younger customers. The workshop is equipped for making customized “DIY 153” ballpoint pens and felt-tip “Plus Pens.” In the Ink Lab, visitors can create their own fountain pen ink by mixing various colors.
연남동 골목에 있는 ‘작은연필가게 흑심(Black Heart)’은 문구 마니아들에게 입소문 난 공간이다. 흑심은 오래된 연필과 그에 담긴 이야기를 수집하는 공간이다. 주인의 취향과 기준으로 직접 수집한 연필과 그에 관련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이곳은 젊은 세대들뿐만 아니라 40~50대 손님들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단종된 브랜드 또는 과거 디자인의 연필들도 있어 이용객들 역시 흥미로워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듯한 모양새다.
At Black Heart, a small pencil store in a back alley of Yeonnam-dong, in western Seoul, customers can enjoy old pencils and the stories behind them, along with other related items, that the store owner has collected over the years. The regular customers include not only young people but also those in their 40s and 50s. Browsing customers often show a keen interest in vintage pencils with old designs whose production has long been discontinued.
그 밖에도 성수동의 ‘포인트 오브 뷰 서울’, 홍대 ‘호미화방’, 종로 ‘파피어프로스트’ 등은 문구 마니아들이 좋아할만한 창작을 위한 도구를 판매한다.문구 탐험과 여행을 겸하고 싶은 문구 여행자들이라면,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연필뮤지엄(pencil museum)으로 향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영국의 ‘더웬트 연필박물관’을 벤치마킹한 이곳은, 연필뮤지엄 대표가 30여 년간 100여 개 국가를 다니며 수집한 나라별 다양한 테마의 연필 3,000여 점을 전시한다. 각종 세계적인 브랜드의 연필과 함께 ‘흑연이 연필로 탄생하기까지의 제작 과정’, ‘역사에 남은 연필의 기록’ 등 연필 관련 역사와 오브제를 한눈에 살펴보기 충분하다.
Other shops, including Point of View Seoul in Seongsu-dong, Homi Art Shop in Hongdae, and Papier Prost in Jongno, sell creativity tools that appeal to hardcore stationery enthusiasts. Anyone willing to travel outside of Seoul in search of the history of stationery could start with the Pencil Museum in Donghae, Gangwon Province. Following the example set by the Derwent Pencil Museum in Keswick in the English Lake District, the museum, which looks out over the East Sea, displays some 3,000 pencils from about 100 countries that the owner collected over 30 years. The museum also shows videos on the history of pencils and the process of turning graphite into pencil lead. It seems, then, that it’s too soon to write off pens and pencils.
문구, 스토리를 담다 – HOTSPOTS
문구는 없어지지 않겠지만, 해당 시장은 여전히 어렵다. 세대가 어려질수록 문구 소비 행태가 줄어든 것은 물론, 저가상품이 많아지며 경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시장엔 변화가 필요했다. 마치 전기·전구가 확산하면서 양초의 쓰임이 변화한 것처럼, 문구의 용도를 확대하고 디테일한 변화로 차별성을 주기 시작했다.
모나미는 자사의 상품에 스토리를 입히며 주목받았다. 지난해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 에디션 제품 ‘153 ID 8.15’를 출시해 한국 광복군을 알리기도 하고 최근엔 탄생화, 탄생석, 별자리 3가지 의미를 담은 펜 등을 출시하기도 했다. 또한 일회용 폐플라스틱, 코코아 껍질 등을 활용해 친환경 제품을 출시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제품을 업사이클 굿즈로 제작하는 등 지속가능성 측면까지 고려하고 있다. 이처럼 문구는 변화를 거듭해 가며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역할,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채 소비자들의 오랜 ‘친구’로서 남아 있을 것이다.
For “digging” pen enthusiasts, Korea’s leading stationery brand, Monami, has begun issuing commemorative products. Last year, on August 15, the National Liberation Day of Korea, the company released a set of products called “153 ID 8.15” in honor of independence fighters. More recently, it added pens decorated with birth flowers, birth stones, and zodiac signs to its product range. Taking sustainability into consideration, Monami also produces eco-friendly products made with discarded plastic bottles or coconut rinds, or by upcycling and repurposing unused products. Pencil buyers looking for something special can enjoy a wide range of choices, regardless of their preferences in weight, color, feel, and type of wood used, and whether they are right- or left-handed.
이승연(Lee Seung-yeon) 매일경제 주간국 시티라이프
Lee Seung-yeonReporter, City Life (Maeil Business Newspaper)